우울증은 그저 우울한 기분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단순한 증상이 아니다. 우울증상은 개인의 성격, 환경 등과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증상과 고통의 모습들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객관적으로 평가 가능한 증상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심리적 증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한 이유이다.

우울 증상은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우울한 기분 등의 정서적 증상, ▲우울한 기분으로 인해 위축되고 활동량이 저하되는 등의 행동적 증상, ▲식욕저하, 두통, 소화장애 등의 신체 생리적 증상, ▲마지막으로, 열등감, 부정적 생각 등의 인지적 증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증상들 중에서 인지적 증상은 ‘인지이론(cognitive theory of depression)’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는 1960년대 정신의학자 벡(Beck)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후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발전되어 우울증의 한 치료방법인 ‘우울증 인지치료’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주변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다. 항상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자신의 반응들을 관찰하고, 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의 정신적인 에너지와 능력들을 사용하여,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이루어지고,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을 ‘인지(Cognition)’라고 하는데, 우울증 환자들을 관찰해 보면 공통적인 인지적 왜곡이 나타난다.

주변을 보면 자신의 환경과 스스로에 대하여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지속되면 스스로는 자신의 사고 과정을 잘 알아채지 못하게 된다.

일상생활을 하는 어느 순간에 부정적이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이를 자각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인한 우울한 기분만을 주로 느끼게 되면서 우울증이 유발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s)’라고 한다. 이것은 엇비슷한 생각들이 습관적으로 자동적으로 연결이 되어, 결과적으로 정서적 증상이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말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실제보다 더 부정적이고, 어둡게 바라보고, 주변 사람들이 이에 대하여 이유를 들어 설명하여도 그러한 생각들은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는 위로가 우울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어떤 사건을 해석하고, 바라보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인지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이를 믿기 때문이다.

1. 이분법적 생각(dichotomous thinking) : ‘나를 좋아한다’ vs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분법적으로 상황을 파악한다. 직장에서의 승진, 학업 성적 결과를 받은 후, 자신에 대하여 실패 또는 성공으로 판단하고, 대인관계에서도 친한 친구의 표정이 어두워지면,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나?’ ‘나를 싫어하나?’ 등의 극단적인 생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2. 선택적 추상화(Selective Abstraction) : 전체 vs 부분

회사에서 사업에 대한 발표를 하게 되면 항상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사람이 있다. 입사 후 발표를 할 때, 실수 없이 잘 진행이 되었고 상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직장동료 몇 명이 자신이 발표 시 “긴장을 해서 목소리가 떨려 전달력이 떨어졌다” 등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이 있은 후 자신의 발표에 대하여 자신감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전반적으로 자신이 회사에서 발표 등의 업무 능력에 인정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전체를 보지 않고 일부 사람들의 평가에 집중하게 되면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로 연결되는 것이다.

3. 과도한 일반화(Overgeneralization) : 몇 번 vs 항상

어쩌다 한 두 번 있었던 일을 가지고 앞으로도 항상 있을 것이라고 미리 넘겨짚는 경우이다. 2~3회의 실패를 맛보게 되면 앞으로 항상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좌절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될 때 항상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정적 사고를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우울한 사람들은 크게 자기 자신, 자신의 미래, 자신의 주변환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인지적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인지 삼제(Cognitive Triad)’라고 하는데, 우울증의 인지적 왜곡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인지적 왜곡 1.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자기 개념(Self concept)’이라고 한다. 자기 개념은 인생을 살며 경험하는 다양한 일들과 대인관계 등에서 영향을 받는데, 우울한 사람들은 직장에서 실수를 하게 되어 회사에 손실을 입히는 상황일 때, 자신에 대하여 ‘나는 능력이 없다. ‘, ‘나는 다른 사람 보다 못났다’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 자기 개념이 과도하게 지속되는 것이 특징적이며, 이로 인해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지적 왜곡 2.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현재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이 미래에도 지속되고 더 악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노력을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자신은 실패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우울한 기분과 맞물려, 변화를 위한 노력보다는 좌절과 실패, 포기 등을 하게 만들고,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게 되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인지적 왜곡 3.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 환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하기에는 주변 환경이 나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주변에는 날 도와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없다’거나 ‘가족들은 모두다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만 하고, 날 이해해 주지 않는다’, ‘세상은 너무 각박하고, 경쟁적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변에 대한 부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게 되어, 친구, 가족 등의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 위축되고 고립된다. 이 과정에서 우울 증상은 더욱 악화되며, 자신의 주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강화된다.

벡(Beck)의 이론에 의하면,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과 상황, 주변에 대한 경직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사람이 과거에 경험한 좋지 않은 일들과 영향을 주고 받게 되면서, 우울한 기분이 나타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울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경직된 신념이 좌절과 실패로 연결되면서 ‘역기능적 신념’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한 20대 남성은 과거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마다 성적이 좋지 않았고, 공부 이외에 잘하는 것을 찾지 못해 주변사람들로부터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실패할 때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후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좌절, 실패를 통해 더욱 강한 믿음이 된다. 경직된 믿음을 ‘역기능적 신념’이라고 한다.

외래에 방문하는 환자 보호자들 중에서 “똑같이 취직을 못해서 힘든 상황인데, 왜 첫째 아들(환자)은 자꾸 부모 탓만 하면서 우울해 하고, 둘째는 그래도 무엇인가 노력하고 공부하고 하는 걸까요?”’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반응은 이러한 역기능적 신념들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역기능적 신념은 크게 사회적 의존성(Social dependency)과 자율성(Autonomy)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적 의존성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여,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가치를 두어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자율성은 자신의 일, 성공 또는 성취, 주변 사람과의 독립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역기능적 신념들은 개인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우울증의 인지모형